포트폴리오보다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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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포트폴리오를 다시 만들까 고민했다. 예쁘게 정리된 프로젝트 몇 개, 멋진 대표 이미지, 임팩트 있는 카피. 그런 걸 갖추면 나를 잘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손이 안 갔다. 대신 이 블로그에 계속 기록을 쌓았다. 그러다 문득, 나한테는 이쪽이 더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트폴리오는 최고의 순간만 보여준다
포트폴리오는 편집된 결과물이다. 가장 잘 나온 프로젝트를, 가장 잘 나온 각도로, 실패와 헤맨 과정은 다 걷어내고 보여준다. 물론 그게 나쁜 건 아니다. 목적이 그거니까. 하지만 그 사람이 실제로 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거기서 잘 안 보인다.
나는 매끈한 결과물보다, 문제를 만났을 때 그 사람이 어떻게 접근하는지가 더 궁금하다. 어디서 막혔고, 왜 그 방법을 골랐고, 뭘 포기했는지. 그건 완성된 카드 이미지가 아니라 과정의 기록에서 드러난다.
기록은 편집되지 않은 과정을 남긴다
기록은 그날의 나를 그대로 남긴다. OG 이미지를 코드로 옮기다 레이아웃이 깨져서 헤맨 것, 새벽 코딩을 끊기로 한 것, 코드보다 문장이 어렵다고 느낀 것. 하나하나는 별거 아니지만 쌓이면 결이 생긴다. 이 사람이 무엇에 관심 있고, 어떻게 일을 대하고, 어떤 속도로 자라는지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포트폴리오가 정지된 사진이라면 기록은 흘러가는 영상이다. 사진 한 장은 잘 고르면 완벽해 보이지만, 영상은 편집이 어렵고 그래서 더 정직하다.
부수효과: 생각이 정리된다
기록에는 예상 못 한 이득이 있다. 쓰다 보면 생각이 정리된다. 머릿속에서 뭉쳐 있던 걸 문장으로 풀어내려면 결국 그걸 이해해야 한다. "새벽 코딩이 손해다"라는 막연한 느낌도, 글로 옮기면서 왜 손해인지 계산하게 됐다. 쓰기 전엔 기분이었고, 쓰고 나선 판단이 됐다.
그러니까 기록은 남에게 나를 보여주는 동시에, 나에게 나를 정리해 주는 일이다. 포트폴리오는 앞의 것만 하고, 기록은 둘 다 한다.
한 방의 잘 꾸민 페이지를 만들 에너지로, 나는 그냥 계속 쓰기로 했다. 느리지만 정직한 쪽이 결국 멀리 간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