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철학

작은 회사일수록 통합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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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전시에서 일하며 수없이 본 장면이 있다. 디자이너가 시안을 넘기고, 퍼블리셔가 마크업을 뜨고, 개발자가 기능을 붙인다. 각자 자기 일은 잘한다. 그런데 결과물은 이상하게 시안과 다르다.

분업의 비용은 경계에서 발생한다

디자이너의 의도는 시안 파일에 다 담기지 않는다. 여백의 리듬, 호버의 뉘앙스, 모션의 타이밍 같은 것들. 퍼블리셔는 그걸 추측으로 메우고, 개발자는 퍼블리셔의 마크업을 다시 추측으로 해석한다. 단계가 하나 넘어갈 때마다 의도가 조금씩 증발한다.

큰 조직은 이 증발을 감당할 수 있다. 디자인 시스템을 만들고, QA를 돌리고, 회의를 늘리면 된다. 그럴 인력이 있으니까. 문제는 작은 회사다. 세 명짜리 팀이 디자이너-퍼블리셔-개발자로 쪼개져 있으면, 일하는 시간보다 서로에게 설명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한 사람이 병가라도 내면 파이프라인 전체가 멈춘다.

관통하는 사람

한 사람이 디자인과 퍼블리싱을 같이 하면, 시안-마크업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비용이 0이 된다. 퍼블리싱과 프론트를 같이 하면 마크업-기능 사이의 비용이 0이 된다. 두세 단계를 관통하는 사람은 그 경계들을 통째로 지운다. 전문성이 얕아지는 게 아니냐는 반론이 있는데, 작은 회사에서 필요한 건 각 분야 상위 1%의 깊이가 아니다. 경계에서 새지 않는 실행력이다.

나는 디자인에서 시작해 퍼블리싱으로, 다시 프론트엔드로 넘어왔다. 처음엔 커리어가 어중간해지는 것 같아 불안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이 어중간함이 작은 조직에서는 그대로 경쟁력이 된다.

AI가 곱해주는 것

요즘 AI 코딩 에이전트와 일하면서 확신이 굳어졌다. AI는 실행 속도를 올려준다. 하지만 무엇이 맞는 결과물인지 판단하는 건 여전히 사람의 몫이고, 그 판단은 여러 단계를 아는 사람일수록 정확하다. 시안의 의도를 아는 사람이 AI가 뽑은 마크업을 검수하면 한 번에 끝난다. 모르는 사람이 검수하면 다시 전달과 추측의 루프가 시작된다.

통합형 인재에게 AI는 부족한 손을 채워주는 도구다. 혼자서 시안부터 배포까지 가는 게 실제로 가능해졌다. 분업형 조직에 AI를 얹으면 각 단계가 빨라질 뿐 경계의 비용은 그대로 남는다. 통합형에게 얹으면 실행력이 몇 배가 된다. 작은 회사가 사람을 뽑는다면, 어느 쪽을 뽑아야 할지는 자명하다.

작은 회사일수록 통합형이 필요하다 — 디코드랩(DCODELA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