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화할 일과 손으로 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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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에이전트로 작업 흐름을 실험하다 보니 요즘 나의 기본 반응이 "이것도 자동화할 수 있지 않을까?"가 됐다. 그러다 지난주에 제대로 배꼽이 커지는 경험을 했다.
30분짜리 일에 이틀을 쓴 이야기
블로그 포스트의 썸네일을 만들 때마다 반복하는 자잘한 작업이 있었다. 한 달에 몇 번, 한 번에 30분 정도. 이걸 스크립트로 자동화하겠다고 이틀을 썼다. 이미지 처리 라이브러리를 고르고, 예외 케이스를 처리하고, 폰트 렌더링이 미묘하게 어긋나는 걸 잡느라 밤을 새웠다.
계산해보면 답이 나온다. 월 2회 × 30분이면 연간 12시간. 나는 그 12시간을 아끼려고 16시간을 선불로 냈고, 스크립트 유지보수 비용은 계산에 넣지도 않았다. 자동화 자체가 재밌어서 자동화한 것이지, 필요해서 한 게 아니었다.
반복 빈도 × 시간이라는 기준
이후로 자동화 앞에서 두 가지를 곱해본다.
- 얼마나 자주 반복되는가 — 매일인가, 월 1회인가
- 한 번에 얼마나 걸리는가 — 5분인가, 1시간인가
매일 10분 걸리는 일은 자동화하면 연간 40시간 이상이 돌아온다. 투자할 가치가 있다. 월 1회 30분짜리는 웬만하면 그냥 손으로 하는 게 이득이다. 단순한 산수인데, 자동화의 유혹 앞에서는 이 산수가 이상하게 잘 안 된다. 만드는 과정이 주는 재미가 판단을 흐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계산만으로 안 되는 영역이 있다
빈도와 시간을 곱해서 수지가 맞아도 손에 남겨두는 일들이 있다.
디자인 시안의 여백을 최종 조정하는 일. 글을 발행하기 전 마지막으로 소리 내어 읽어보는 일. 클라이언트 피드백에 답장을 쓰는 일. 이런 건 반복되고 시간도 들지만 자동화하지 않는다. 판단과 감각이 곧 결과물의 품질인 일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을 건너뛰면 아웃풋이 미묘하게 나빠지고, 더 무서운 건 그 감각 자체가 무뎌진다는 거다.
반대로 이미지 리사이징, 배포 전 체크리스트, 파일명 정리 같은 건 판단이 필요 없는 순수 반복이다. 이런 건 기계에 넘길수록 좋다.
결국 기준은 두 겹이다. 먼저 빈도×시간으로 걸러내고, 통과한 것 중에서도 내 감각을 기르는 일인지, 감각을 소모하는 일인지 다시 묻는다. 감각을 기르는 반복은 손에 남기고, 소모하는 반복만 넘긴다. 자동화는 시간을 벌기 위한 것이지, 일에서 나를 지우기 위한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