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디자이너'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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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 전만 해도 'AI 디자이너'라는 말을 들으면 반쯤 농담 같았다. 지금은 내 작업 방식 자체가 그 말에 가까워졌다.
시안을 그리는 시간에서 고르는 시간으로
요즘 새 프로젝트 시안 단계에서 내가 하는 일은 이렇다. 레퍼런스와 방향 키워드를 정리해서 AI에게 던지고, 레이아웃 베리에이션을 여러 개 받는다. 마음에 드는 방향이 나오면 그 계열로 다시 파생시킨다. 예전엔 시안 하나를 그리는 데 하루가 갔다면, 지금은 하루에 수십 개의 방향을 보고 버린다.
여기서 오해하기 쉬운 지점이 있다. AI가 디자인을 한다기보다, 탐색 비용이 거의 0이 된 것이다. 그리는 시간이 사라진 자리에 고르고 판단하는 시간이 들어왔다.
같은 도구, 다른 결과물
흥미로운 건 같은 도구를 써도 결과물 차이가 크다는 점이다. 주변에서 지켜본 바로는, 차이를 만드는 건 프롬프트 스킬이 아니라 뭐가 좋은 건지 아는 눈이다.
디자인 감각이 있는 사람은 수십 개의 베리에이션에서 살릴 것과 버릴 것을 빠르게 가른다. 여백이 어색한 것, 위계가 무너진 것, 방향은 맞는데 디테일이 아닌 것을 구분한다. 감각이 없으면 그럴듯한 것과 좋은 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AI가 내놓는 평균적인 결과물에 수렴한다. 도구가 상향 평준화를 만들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안목의 격차를 더 벌려놓는다.
감각은 어디서 오나
그럼 그 안목은 어디서 생기나. 결국 직접 그려보고, 망해보고, 왜 어색한지 뜯어본 시간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AI 때문에 손으로 그릴 일이 줄어드는데, AI를 잘 쓰려면 손으로 그려본 경험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AI가 디자이너를 대체한다'는 문장을 믿지 않는다. 대체되는 건 그리는 노동이고, 남는 건 판단이다. 다만 판단만 남은 세계에서는 판단력이 없는 게 훨씬 빨리 드러난다. 'AI 디자이너'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아진 지금, 진짜 질문은 도구가 아니라 이쪽인 것 같다. 나는 좋은 것을 알아보는 눈을 계속 기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