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퍼블리싱, 프론트엔드 — 왜 꼭 세 사람이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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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전시에서 일하면서 수없이 본 장면이 있다. 디자이너가 시안을 넘기고, 퍼블리셔가 마크업을 하고, 개발자가 기능을 붙인다. 각자 자기 일을 잘했는데, 최종 결과물은 시안과 미묘하게 다르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뭔가 빠져 있다.
전달할 때마다 사라지는 것
시안에는 파일로 표현되지 않는 정보가 있다. 이 여백이 왜 이만큼인지, 이 인터랙션이 어떤 느낌이어야 하는지. 디자이너 머릿속에는 있지만 피그마에는 없는 것들이다. 퍼블리셔는 보이는 것만 옮기고, 개발자는 받은 마크업의 구조 안에서만 움직인다. 전달이 한 번 일어날 때마다 의도가 한 겹씩 벗겨진다.
물론 커뮤니케이션으로 메울 수 있다. 그런데 일정에 쫓기는 프로젝트에서 "이 easing 값이 왜 이런지" 물어볼 여유가 있는 팀을 나는 거의 못 봤다. 손실은 구조적이다. 사람이 나뉘어 있는 한 생긴다.
분업은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의 문제였다
세 직무가 나뉜 건 각 영역이 깊어서라기보다, 한 사람이 셋을 다 하기엔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디자인 감각과 CSS와 React를 다 아는 사람은 예전에도 있었다. 다만 그 사람도 손은 두 개였다.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나는 요즘 AI 코딩 에이전트와 함께 시안 방향을 잡고, 마크업을 뽑고, 컴포넌트를 만들고, 간단한 API까지 붙이는 흐름을 실험 중이다. 손이 하던 일의 상당 부분을 에이전트가 대신한다. 남는 건 판단이다. 이게 맞는 구조인지, 이 느낌이 의도에 맞는지 결정하는 일. 그 판단은 세 영역을 다 이해하는 사람이 할 때 손실 없이 이어진다.
세 사람의 일이 아니라 세 관점의 일
직무 통합이 세 명분의 일을 혼자 떠안는 거라면 반대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관점이다. 디자인의 눈, 마크업의 구조 감각, 개발의 상태 관리 사고를 한 사람이 관통할 수 있게 됐다는 것. 도구가 손을 대신해주는 시대에, 나눠야 할 건 작업이 아니라 책임의 단위인지도 모른다.
나는 디자인에서 출발해 퍼블리싱을 거쳐 프론트엔드까지 왔다. 그 경로가 예전엔 어중간하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이 경로가 유리해지고 있다는 걸 체감한다. 전달 손실이 없는 한 사람의 흐름. 그게 요즘 내가 실험하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