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와서 아무 데도 안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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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비가 온다. 나갈 일도 없어서 하루 종일 집에 있었다.
이런 날은 새로 뭘 만들 마음이 안 생긴다. 대신 예전에 짜둔 걸 열어서 안 쓰는 걸 지웠다. 주석 처리해놓고 몇 달째 그대로인 것들. 지우면서 이걸 왜 남겨뒀나 싶었는데, 남겨둔 이유가 분명히 있었을 거다. 기억이 안 날 뿐이다. 그래서 조금 무서웠다. 그래도 지웠다.
오후 내내 했는데 화면은 똑같다. 겉으로는 아무 일도 안 일어났다.
중간에 커피를 내려놓고 마시는 걸 잊었다. 저녁에 발견했다. 식은 채로 책상 구석에 있었다. 이번 주에만 두 번째다. 컵이 자꾸 없어진다 했더니 다 여기저기 놓여 있다.
창 닫는 것도 깜빡해서 창틀이 다 젖었다. 수건으로 닦았다. 널어놓은 빨래는 마르지가 않는다. 방이 눅눅하다. 제습기를 살까 검색하다가, 작년에도 똑같은 걸 검색했다는 게 떠올랐다. 그때도 안 샀다.
저녁까지 비가 왔다. 커피를 새로 내렸다. 이번엔 마셨다.